대학 커뮤니티 전쟁, 훌리 문화의 배신 - 디시인사이드 속 대학생들의 은밀한 가면무도회


대학 커뮤니티 전쟁, 훌리 문화의 배신 - 디시인사이드 속 대학생들의 은밀한 가면무도회

처음엔 그냥 재미로 시작했다. 학교 자랑하는 댓글 몇 개 달고, 다른 학교와 우리 학교를 비교한 글에 반박 댓글 좀 달았을 뿐이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감정이 격해졌다. 아니, 이 사람들이 진짜 우리 학교를 모르나?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고 있잖아! 그래서 더 열심히 반박하고, 증거도 찾아 올렸다. 하지만 점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왜 저 사람들은 물증을 눈앞에 보여줘도 인정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 나와 논쟁하던 사람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이 주장하는 학교 학생도 아니었다는 것. 단지 다른 학교의 훌리(응원단)였을 뿐. 대체 이 익명의 인터넷 공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혹시 디시인사이드, 에브리타임, 인스티즈 같은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커뮤니티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이면에 어떤 문화가 숨어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디시인사이드 대학 커뮤니티 게시판 댓글전쟁 일러스트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대학생들 사이에 끊임없는 ‘학교 서열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자신의 학교를 아끼는 마음에서 벌어지는 논쟁 같지만, 그 이면에는 ‘훌리(후리)‘라 불리는 집단들의 치밀한 전략이 숨어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 ‘훌리’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왜 그들은 익명의 공간에서 이러한 활동을 하는 걸까요?

훌리(후리) 문화의 실체

훌리(후리)는 원래 영국의 축구 응원문화에서 유래된 용어로, 과격한 응원을 하는 팬을 지칭합니다. 하지만 한국 대학가에서는 이 단어가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학 훌리란, 자신의 대학을 과도하게 옹호하거나 타 대학을 비하하는 행위를 주로 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의 학교를 드러내지 않고, 때로는 다른 학교 학생인 척 가장하며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실제로 4년제 대학 갤러리(4갤)에서 활동하면서 봤던 사례를 소개해 드릴게요.

어느 날 전북대와 강원대의 입결(입시결과)을 비교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정보 공유처럼 보였지만, 댓글이 쌓이면서 상황이 심각해졌어요.

한 이용자가 “전북대 = 강원대” 라며 두 학교의 수준이 비슷하다는 내용의 글과 함께 입시 결과 자료를 올렸는데, 이게 폭풍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응 아니야~” 라는 간단한 댓글부터 시작해서, 갑자기 각종 대학 서열표와 입결 자료들이 물밀듯이 올라오기 시작했죠. 그런데 댓글들을 자세히 보니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디시인사이드 대학커뮤니티 익명 댓글전쟁 가면 훌리문화

일부 이용자들은 마치 자신이 해당 학교와 전혀 관계없는 ‘객관적인 제3자’인 것처럼 글을 썼지만, 자세히 보면 특정 학교에 대한 정보만 지나치게 자세히 알고 있거나, 특정 학교를 옹호하는 논리가 일관되게 반복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일부 이용자들은 특정 학교(주로 부경대나 전남대)의 훌리라고 지목당하기도 했어요. “가면무도회 멈춰—” “가면을 벗어주세요~” 같은 댓글들이 달리면서 상황은 더욱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가면무도회의 시작 - 왜 익명을 가장할까?

그렇다면 왜 이들은 자신의 학교를 직접 밝히지 않고 가면을 쓰는 걸까요? 처음엔 정말 이해가 안 됐습니다. 자기 학교가 좋으면 당당하게 “나는 ㅇㅇ대 학생이고, 우리 학교가 좋다”라고 말하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몇 달간 이런 논쟁들을 지켜보며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첫째, 객관성의 가면입니다. “나는 ㅇㅇ대와 관계없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ㅇㅇ대가 좋다”라고 말하면, 주관적인 편향 없이 중립적 의견처럼 보이게 됩니다. 이는 설득력을 높이는 전략입니다.

둘째, 집단의 힘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여러 명이 다른 아이디로 같은 주장을 하면, 마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사례가 하나 있어요. 한 이용자가 “갤리젠 좋네굿”이라는 짧은 글을 올렸는데, 곧바로 다른 이용자가 “저 예전부터 부경대 훌리들이랑 전남대 훌리들이 가면쓰고 하는 짓”이라며 ‘가면무도회’라고 규정했습니다.

디시인사이드 대학 커뮤니티 논쟁 말풍선 일러스트

이 시점에서 저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정말 이들은 모두 특정 대학의 훌리일까? 아니면 그냥 평범한 대학생들의 논쟁일 뿐인데 ‘훌리’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일까?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상황 속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논쟁들이 주로 일어나는 학교들 사이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어요.

지거국 서열 전쟁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선

‘지거국’이라는 용어 들어보셨나요? 지역거점국립대학의 줄임말로, 각 지역을 대표하는 국립대학들을 의미합니다.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전북대, 충북대, 충남대, 강원대 등이 대표적이죠.

이 학교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서열 경쟁이 존재합니다. 특히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이런 서열 논쟁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부경전충 북북 강경제” - 이것은 디시인사이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지거국 서열 구분법입니다. 상위권(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충남대), 중위권(전북대, 충북대), 하위권(강원대, 경상국립대, 제주대)으로 구분하는 방식이죠.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전통적인 서열에 변화가 생기면서 논쟁이 더 치열해졌습니다. 특히 전북대와 강원대 사이의 경쟁이 뜨겁습니다.

한 이용자가 올린 “다시는 강원대를 무시하지 마라”라는 글에는 강원대의 입시결과가 전북대를 앞질렀다는 주장과 함께 여러 증거 자료들이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전북대 입결 땄다고!!!!” 같은 흥분된 반응도 있었죠.

대학서열 디시인사이드 온라인대학생 댓글전쟁 일러스트

하지만 이런 서열 논쟁에서 핵심은 무엇을 기준으로 서열을 매기느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입시결과(누백)를 기준으로 삼고, 또 다른 사람들은 취업률이나 사회적 인지도, 연구성과 등을 중요시합니다.

한 이용자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애초에 누백표 신뢰하고 그게 정답인가마냥 여기는게 말이 안되는거임… 대학 입시는 단순한 최종등록자 70%컷이 다가 아니란걸 알꺼임… 모집인원, 탐구 1과목 반영, 영어 반영비율, 가장 잘본과목을 가장 많이 반영, 심지어는 한국사 반영 등등 온갖 외생변수가 넘쳐남”

실제로 각 대학마다 모집인원도 다르고, 입시전형도 다양해서 단순히 수능 점수만으로 대학의 서열을 정하기는 어렵습니다. 1,400명을 모집하는 대학과 700명을 모집하는 대학이 같은 평균점수를 가졌다면, 더 많은 학생을 뽑은 학교가 사실상 더 높은 입결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면 뒤에 숨은 진짜 모습

여러 달간 디시인사이드의 대학 갤러리들을 관찰하면서, 저는 점점 이 ‘가면무도회’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모든 논쟁 참여자들이 특정 대학의 ‘훌리’일까요?

제 생각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일부 열성적인 학생들은 자신의 학교를 과도하게 옹호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논쟁 참여자를 ‘훌리’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시각일 수 있어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할 때 가장 쉬운 방법으로 “너 ㅇㅇ대 훌리지?”라고 규정해버리는 패턴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상대방의 주장 자체보다는 ‘훌리성’에 초점을 맞춰 논점을 흐릴 수 있기 때문이죠.

한 이용자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얘네 훌리들은 눈가리고 아웅에지네… 편한대로 논점 흐리고 논리 바꾸는게 일상인 애들임… 니네가 먼저 빨아재낀 자료가지고 반박해도 들어처먹질 않냐”

이런 비난은 결국 건설적인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누군가 열심히 자료를 찾아와도 “넌 그냥 ㅇㅇ대 훌리니까 그런 말하는 거잖아”라는 식으로 논의 자체가 차단되는 거죠.

디시인사이드 대학커뮤니티 가면벗는장면 불안한표정 이차원일러스트

그런데 디시인사이드 내에서 진짜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습니다. 의학과 이성균 교수의 성균관대 의과대학 교수 임용 소식이었어요. 강원대 출신 교수가 명문 의대 교수가 된 사례였는데, 이런 글에는 ‘훌리’ 논쟁이 거의 없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대학의 이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성취를 이루냐는 것이 아닐까요? 교수님의 사례처럼, 본인의 연구와 노력으로 인정받는 것이 진정한 대학 생활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양면성

디시인사이드, 에브리타임, 인스티즈와 같은 대학생 커뮤니티는 정보 공유와 소통의 장으로서 분명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무분별한 갈등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특히 ‘훌리’ 문화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활동하는 현상은 온라인 공간의 양면성을 잘 보여줍니다. 익명성은 자유로운 발언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책임감 없는 행동을 조장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관찰한 결과,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훌리’들은 실제로는 소수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이 매우 열정적이고 지속적이다 보니, 마치 많은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이런 갈등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정보를 받아들일 때 비판적 사고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군가 “ㅇㅇ대가 최고다”라고 주장한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떤 근거가 있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둘째,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대학은 저마다의 강점과 특색이 있습니다. 어떤 학교가 특정 분야에서 뛰어나다고 해서 모든 면에서 우수한 것은 아니니까요.

대학생활 디시인사이드 커뮤니티 댓글전쟁 일러스트

마지막으로, 실제 대학 생활의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서열 논쟁보다, 자신의 대학에서 어떤 경험을 쌓고 어떤 성장을 이루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디시인사이드의 한 이용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니들이 왜 싸우는지 모르겠음… 셋 다 사이좋게 지내라.” 어쩌면 이것이 가장 현명한 조언이 아닐까 싶네요.

결론: 가면 너머의 진짜 대학 생활

처음에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대학 커뮤니티의 ‘훌리’ 문화는 정말 몇몇 학생들이 자신의 학교를 과도하게 옹호하는 현상일까요, 아니면 익명성을 악용한 소수의 행동일까요?

제가 몇 달간 관찰한 결과, 진실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일부 학생들은 자신의 학교에 대한 자부심으로 열정적으로 옹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의도적으로 타 학교를 비하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온라인 논쟁이 실제 대학 생활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대학이란 지식을 쌓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공간이니까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얻고 소통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친 서열 논쟁이나 ‘훌리’ 활동은 우리의 대학 생활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다음에 디시인사이드나 다른 대학 커뮤니티에서 열띤 논쟁을 보게 된다면,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세요. 이 논쟁이 진짜 중요한가? 내 대학 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가면 너머의 진짜 모습은 어떨지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대학 생활은 온라인 논쟁이 아닌, 실제 캠퍼스에서의 경험과 성장으로 채워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대학을 다니든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진정한 대학 생활의 의미가 아닐까요?

인터넷 논쟁에서 훌리는 가면을 쓰지만, 실제 인생에서는 당당히 자신의 얼굴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게 바로 진짜 우리의 모습이니까요.